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 스튜어트 밀 (문단 편집) === 정신적 위기 === 10대 때 남들이 평생 할 공부를 이미 끝냈고, 인간 정신의 한계를 본 것 때문인지, 20살이 되고서는 결국 정신적으로 탈이 나게 된다. 갑자기 모든 것이 시시해져 버린 것이다. 밀은 세계의 진보라는 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 다음과 같이 물었다. "내 인생의 목적 ㅡ 내가 바란 제도와 사상 변화 ㅡ 모두가 실현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이 과연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까?" 밀의 마음 속에서 "아니다"라는 분명한 대답이 들려왔다. 밀은 삶의 목적을 잃어버려 그 어떤 즐거움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며 그로인해 몇 달 동안이나 절망에 빠져 우울한 생각에 잠기곤 했다. 밀이 생각해봤을 때 그 원인은 '분석적 생각' 때문이었다. 분석은 우리로 하여금 우연하게 밀착된 여러 이념들을 정신적으로 분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여, 관념이 가지는 편견의 모든 결과를 약화시키고 그 편견을 타파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바로 그 장점 때문에 그 관념이 가지는 '감정'마저 약화시키는 경향을 지니고, 그것은 사람의 욕망과 쾌락을 두려울 정도로 손상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분석의 습관은, 신중한 사색과 통찰력에 대해서는 유리하지만, 정열과 미덕의 밑바닥에 언제나 잠재되어 있는 해충" [*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박홍규 옮김. 문예출판사. 2019. p.156]같은 것이라고 밀은 생각했고, 스스로가 그 분석적 습관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매몰되었다고 느꼈다. 그러한 무미건조하고 우울한 생각이 변하게 된 것은, 마르몽텔의 《회상기》[* 프랑스의 극작가 Jean François Marmontel(1723~1799)의 『Memoires d'un Père, pour Servir A L'Instruction de Ses Enfants, (1800~1806)』]를 읽으면서 부터다. 아버지를 잃은 아이가 가족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고자하는 그 광경이 밀에게 직접 보이는 듯 생생하게 전해졌고, 밀은 그 장면에서 불현듯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 무렵 읽었던 [[윌리엄 워즈워스|워즈워스]]와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콜리지]]의 시들도 감성의 회복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밀은 메말라 버린 줄만 알았던 자신의 감정이 문학작품을 통해 다시 느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 순간부터 밀의 짐은 가벼워지기 시작해서, 그 뒤 몇 번 되돌아가기도 했고 그것이 몇 달 이어지기도 했지만, 다시는 과거처럼 우울한 상태에 빠지지는 않았다. 이 시기 경험으로 밀의 행복관은 180도 바뀌게 된다. 행복은 그것을 인생의 직접적인 목적으로 삼는 것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엇을 목적으로 하면서 그 '''지나가는 길'''에서 발견되어지는 것이라고 말이다. 즉, 과정 그 자체에 그 의미가 있는 시나 예술이야말로, '분석적 생각'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무기라는 사실을 밀은 깨닫게 된 것이다. >행복이 모든 행동의 시금석이요, 인생의 목적이라는 확신이 흔들린 적은 정말로 없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이 목적이 이것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삼지 않아야만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기 자신의 행복 이외의 다른 어떤 목적 ㅡ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서, 인류의 진보에서, 심지어 어떤 예술이나 취미에서,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 이상적인 목적으로서 뒤따라오는 것 ㅡ 에 정신을 집중하는 사람만이 행복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요컨대 그들은 행복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목표로 하면서 부차적으로 행복을 찾는다. > >인생의 즐거움들은 제일 목표로 삼지 않고 지나가는 길에 취할 때야 비로소 유쾌한 것이 되기에 층분하다. 즐거움을 제일 목표로 삼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곧 불충분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날카로운 검토를 당해낼 수가 없다. 그대가 행복한가 안 한가를 자신에게 물어보라. 그리하면 그대는 곧 행복하지 않게 되고 만다. 단 하나의 가능성은, 행복이 아니라 행복과 무관한 어떤 목적을 마치 인생의 목표인듯이 여기는 것이다. 그대의 자아의식, 그대의 검토, 그대의 자문자답에서, 스스로를 지칠 대로 지치게 만들어라. 그리고 만약 다행스럽게도 상황이 된다면, 그대는 행복을 곱씹거나 그것을 고민하지 않아도, 상상 속에서 미리 대처하거나 까다롭게 따져서 그만 날려버리지 않아도, 그대가 호흡하는 공기와 함께 행복을 들이마시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이 이제 내 인생 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 I never, indeed, wavered in the conviction that happiness is the test of all rules of conduct, and the end of life. But I now thought that this end was only to be attained by not making it the direct end. Those only are happy (I thought) who have their minds fixed on some object other than their own happiness ; on the happiness of others, on the improvement of mankind, even on some art or pursuit, followed not as a means, but as itself an ideal end. Aiming thus at something else, they find happiness by the way. The enjoyments of life (such was now my theory) are sufficient to make it a pleasant thing, when they are taken en passant, with- out being made a principal object. Once make them so, and they are immediately felt to be insufficient. They will not bear a scrutinizing examination. Ask yourself whether you are happy, and you cease to be so. The only chance is to treat, not happiness, but some end external to it, as the purpose of life. Let your self-consciousness, your scrutiny, your self- interrogation, exhaust themselves on that ; and if otherwise fortunately circumstanced you will inhale happiness with the air you breathe, without dwelling on it or thinking about it, without either forestalling it in imagination, or putting it to flight by fatal questioning. This theory now became the basis of my philosophy of life. ( John Stuart Mill, ''Autobiography (1873)'' p.142-143)] 이러는 와중에 24살의 밀은 해리엇 테일러[* Harriet Taylor (1807년 ~ 1858년). 존 스튜어트 밀과 재혼 후에는 해리엇 테일러 밀(Harriet Taylor Mill).]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당시 밀은 정신적 위기를 극복하고 감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해리엇에게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해리엇은 그녀를 한사람의 동료로서 대우해준 밀에게 자연스레 끌렸다. 문제는 해리엇이 밀과 만났을 땐 이미 그녀가 3명의 자녀를 가진 유부녀였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플라토닉 러브]]를 유지했으나, 곧 주변 사람들에게 추문의 대상이 되었고, 밀의 아버지도, 형제도, 친구도, 스승도 밀의 사랑에 반대했다. 특히 어머니가 극렬하게 반대했는데, 밀은 자신의 사랑을 반대한 그 모두와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점차 사회적으로 고립되어갔다. 한편 해리엇은 남편과 별거를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남편 존 테일러는 이혼할 생각이 없었고, 이후 밀과 해리엇은 무려 20년 동안이나 정신적 사랑만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해리엇의 남편 존 테일러가 암으로 죽고난 이후에야 밀은 해리엇과 그녀의 딸들을 보살펴주기 위해서 해리엇과 결혼을 했다. 그러나 7년 뒤, 요양차 들렸던 프랑스 아비뇽에서 해리엇이 폐출혈로 사망하면서 밀의 잠시나마의 행복도 그것으로 끝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